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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영화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 관람 후기

by 휴가간고양이 2024.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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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개봉한 일본 영화 퍼펙트 데이즈’(빔 벤더스 감독)를 토호시네마 오사카 난바점에서 보고 왔습니다.

76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작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영화인데요.

영화 쉘위댄스에서부터 일드 더데이즈까지 폭넓은 작품을 보여주고 있는 야쿠쇼 코지가 주연입니다.

 

영화 자체가 매우 잔잔하고 주인공의 일상을 나열하는 방식이다 보니 후기를 적더라도 특별히 스포라고 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는 도쿄 공공화장실의 청소부로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화분에 물을 주고, 똑같은 자판기 커피를 뽑아 화장실을 청소하러 출근합니다.

한마디 말도 없이 도쿄 이곳저곳의 화장실을 광이 날 정도로 닦는데요. 후배가 너무 열심히 하는 것 아니에요?”라고 물어도 그저 묵묵히 청소만 합니다.

그에게는 취미이자 생활 습관이 있습니다. 자동차에서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는 것과, 쉬는 시간에 가장 아끼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편의점 샌드위치를 먹으며 필름 카메라로 나무와 햇살 사진을 찍는 것입니다.

매일 칼같이 정해진 대로 일하는 것처럼, 퇴근 이후의 모습도 매일 똑같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 목욕탕에 가고, 필름 인화를 맡기고, 주말에는 코인란도리에서 작업복을 세탁합니다. 가족이 없기 때문에 화분들을 애지중지 돌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의 내용이 대략 영화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이때부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나름대로 해석해 보았습니다.

 

우선, 묵묵히 맡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주인공을 보고 그가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그저 맡은 바 일을 묵묵히 해내고자 애쓰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사람이 훌륭한 사람, 좋은 사람이라고 여길 만하다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부나 권력, 명예처럼 대단한 점이라고는 없는 주인공이지만 관객들은 어느새 그의 삶에 매료됩니다.

평범한 사람도 훌륭한 사람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것처럼, 평범한 삶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 완벽한 나날(Perfect Days)이다는 의미가 함축된 듯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영화를 보는 우리들도 주인공처럼 감정 표현 없이 묵묵히 일만 하며 살 수 있을까요? 오히려 주인공과 같은 존재야말로 실제로는 보기 힘든 캐릭터가 아닐까요?

영화 후반부는 그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줍니다.

주인공의 조카가 가출하여 삼촌 집에 기거하러 찾아옵니다. 주인공은 가출한 조카를 야단치지 않고 조카가 부탁하는 대로 자신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함께 자전거를 타며 인생에 대한 조언도 해줍니다.

나중은 나중이고, 지금은 지금이야”(今度今度, )

조카를 데려가도록 오랜만에 여동생에게 연락한 주인공, 여동생은 운전기사까지 데리고 다닐 정도로 부자입니다. 주인공은 무언가 가족과 절연한 사연이 있을 법한데, 영화에서는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조카와 여동생을 떠나보내며 주인공은 처음으로 눈물을 보입니다. 그에게도 마음속 어딘가에는 가족으로 인한 상처와 슬픔이 있었습니다.

한편, 주인공은 단골 술집의 여주인에게 흠모의 감정을 갖고 있는데, 어느 날 여주인이 다른 남자와 포옹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술을 잔뜩 사서 강가에서 혼술을 합니다.

인간미 없어 보이는 무뚝뚝한 겉모습과 달리 주인공도 애정과 여린 마음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강가에서 주인공은 여주인과 함께 있던 남자와 마주치게 됩니다. 그 남자는 주인공에게 자신은 여주인의 전 남편이며, 암을 선고받아 이혼한 아내에게 작별을 고하고자 들렀다고 말합니다.

주인공은 남자에게 진심으로 공감하며 서로 그림자밟기 놀이를 하자고 합니다.

주인공은 그림자가 겹치는 순간 더 진해진다라고 말합니다.

찰나의 순간이라도 무언가 대상에 진심을 갖고 있다면 그 순간은 큰 의미를 갖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다음날 여느 때처럼 똑같이 출근하는 주인공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영화는 끝납니다.

몇 분간 주인공의 표정이 계속해서 비치는데 이때 울듯 말 듯 한 표정 연기가 정말 압권입니다.

엔딩 크레딧이 어느 정도 올라간 후에, 주인공이 매일 찍는 나무와 햇살 사진을 비춰주며 木漏(KOMOREBI) :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뜻하는 말로, 찰나의 순간 동안에만 존재한다는 자막을 보여줍니다.

 

이때 주인공의 모습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쳇바퀴 도는 것처럼 똑같이 보였던 그의 삶은 사실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항상 새로운 순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들이 각각 특별할 수 있는 이유는 주인공의 대사 지금은 지금, 그림자가 겹치는 순간 더 진해진다에서 알 수 있듯이 매 순간에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단하지 않더라도, 보잘것없는 삶을 살더라도 매 순간 진심을 갖고 있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나날이 된다라는 결론입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 주인공의 마지막 표정처럼 울듯 말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만하면 괜찮아. 이미 너는 완벽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라고 위로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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